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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사적

사적 제195호. 여주 영릉과 영릉 (驪州 英陵과 寧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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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설명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으로 지정된 18개 사적 중 하나입니다. ( 관련 정보 )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이 함께 있습니다.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영릉(英陵):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 관련 사진 )

 영릉(寧陵): 조선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동원상하릉 관련 사진 )

 

▶만난 날짜

 2019년 8월 6일

 2019년 12월 31일

 

▶세종대왕릉 복원 정비 공사

 2017년 11월 1일부터 2020년 12월 말까지 세종대왕릉 복원 정비 공사 추진으로 관람 제한 중입니다.

 효종대왕릉과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은 관람 가능합니다.

 2019년 8월 6일 방문 당시, 세종대왕릉 복원 정비 공사로 정자각까지만 관람 가능했습니다.

 2019년 12월 31일 방문 당시, 세종대왕릉 복원 정비 공사로 관람 불가능했습니다.

 

▶촬영 가능 여부

 촬영 가능

 

▶'사적 제195호. 여주 영릉과 영릉 (驪州 英陵과 寧陵)'에서 만날 수 있는 지정문화재

 보물 제1532호. 여주 효종 영릉재실 관련 사진 )
 천연기념물 제459호. 여주 효종대왕릉(영릉) 회양목 관련 사진 )


'사적 제195호.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의 영릉(寧陵, 효종 능) 능침


▶웹사이트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 링크

 

▶위치

 도로명주소: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지번: 경기도 여주시 번도리 888-1

위 주소는 세종대왕릉주차장과 세종대왕역사문화관과 가까우며, 효종대왕릉은 효종대왕릉주차장으로 가야 가깝습니다.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

 수도권 지하철 경강선 여주역에서 버스로 20여분 소요

버스가 많지 않으니 웹사이트에서 시내버스 교통편을 미리 찾아보길 권해드립니다.

 

▶관람시간

 겨울에 짧아지고 여름에 길어집니다.

  매표시간 관람시간
11月, 12月, 1月 09:00~16:30 09:00~17:30
2月, 3月, 4月, 5月, 9月, 10月 09:00~17:00 09:00~18:00
6月, 7月, 8月 09:00~17:30 09:00~18:30

 

▶관람요금

 만25세~만64세 : 500원

2019년 12월 31일 방문 당시, 세종대왕릉 복원 정비 공사로 관람 불가능한 구역이 있어 무료 개방 중이었습니다.

 


세종대왕역사문화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상세 설명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101950000 )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재위 1418∼1450)과 부인 소헌왕후 심씨(1395∼1446)의 무덤이다.
세종은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 등 각 분야에서 조선시대 문화의 황금기를 이룩한 왕이다.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죽자 헌릉 서쪽 산줄기에 쌍실 무덤인 영릉을 만들었다. 동쪽 방은 왕후의 무덤으로 삼고, 서쪽 방은 왕이 살아 있을 때 미리 마련한 무덤으로 문종 즉위년(1450)에 왕이 죽자 합장하였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서로 다른 방을 갖추고 있는 합장무덤을 하고 있다.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무덤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세조 이후 영릉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무덤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옮기지 못하다가 예종 1년(1469)에 여주로 옮겼다.

무덤의 주변에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다. 무덤을 옮길 때 전에 있던 석물인 상석, 명등석, 망주석, 신도비들은 그 자리에 묻었으며, 훈민문·세종대왕동상·세종전 등은 1977년 영릉정화사업 때 세운 것이다.

영릉(寧陵)은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1618∼1674)의 무덤이다.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영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동원상하릉으로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고, 경종의 무덤인 의릉이 이런 형태를 하고 있다.

조선왕조 왕의 무덤배치에 하나의 전환기가 된 형태로 무덤에는 병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고, 돌 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돌에 문자를 새겼다. 즉 세조의 유언에 따라 병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선릉 때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석을 설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지만, 영릉에서 다시 사라졌다. 무덤 앞에는 상석·문인석·망주석 등의 석물이 있으며, 무덤 아래에는 정자각과 비각이 있다.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잇는 왕의 숲길


 

사적 제195호.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 모습

여주 영릉(驪州, 세종대왕릉) 정자각
여주 영릉(驪州, 세종대왕릉) 능침
여주 영릉(寧陵, 효종 능) 전경
여주 영릉(寧陵, 효종 능)의 인선왕후 능침 모습
여주 효종 영릉재실
여주 효종대왕릉(영릉) 회양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