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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283호. 옥동금 (玉洞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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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날짜

 2020년 1월 9일

 

▶만난 곳

 경기도 안산시 성호박물관

 

▶방문 방법

 수도권 지하철 4호선 한대앞역에서 도보로 20여분 소요

 

▶촬영 가능 여부

 촬영 가능

 

▶답사 포인트 
▷성호 이익의 셋째 형인 옥동 이서(1662~1723)가 만들여 연주한 거문고입니다.

▷18세기 초 거문고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유물입니다.

▷옥동금 아랫면에는 '옥동'이라는 글자와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답사 후기
▷300여년 전의 거문고를 만나뵙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만듬새나 장식 등에서, 악기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어요. 악기를 둘러싼 함이 빛이 번지는 소재여서 사진으로 남기기 쉽지 않았던 점이 다소 아쉽습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83호. 옥동금 (玉洞琴)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상세 설명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483102830000 )

 

‘옥동금’은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년)의 셋째 형인 옥동 이서(玉洞 李漵, 1662~1723년)가 만들어 연주하던 거문고이다. 이 거문고는 제작 시기와 사용자가 분명하여 18세기 초 우리 악기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유물이다.

‘옥동금’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선 고종(1852~1919년) 때 홍문관교리와 영흥부사, 우승지 등을 지낸 수당 이남규(修堂 李南珪, 1855~1907년)의 문집인 『수당집(修堂集)』 권1 「군자금가(君子琴歌)」에 전한다. 『수당집』에 의하면, ‘옥동금’은 옥동 이서가 금강산 만폭동의 벼락 맞은 오동나무를 얻게 되어 이로 거문고를 만들고, 뒤판에 시를 지어 새겼으며, 당시에는 이를 ‘군자금(君子琴)’이라 불렀다고 한다.

옛 사람들에게 악기(樂器)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땔감으로 쓸 나무도 귀했지만, 거문고와 같은 큰 형태의 악기를 제작하기 위한 나무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동금과 같은 거문고가 대를 물려서 전해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해지는 ‘옥동금’의 뒤판에는 소장자였던 옥동 이서의 친필을 집자(集字)한 ‘玉洞’이라는 글자와 효언 윤두서(孝彦 尹斗緖, 1668~1715년)의 아들인 낙서 윤덕희(駱西 尹德熙, 1685~1776년)가 쓴 시가 새겨져 있어 옛 거문고의 품격과 예술적 조형미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옥동금의 크기와 형태가 오늘날의 거문고와 다소 다르기 때문에 악기와 옛 음악을 복원하는 모델로서도 좋은 자료이다.


▶아래부터 2020년 1월 9일. 경기도 안산시 성호박물관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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