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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사적

사적 제207호. 남양주 홍릉과 유릉 (南楊州 洪陵과 裕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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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설명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으로 지정된 18개 사적 중 하나입니다. ( 관련 정보 )

 남양주 홍릉과 유릉은 고종과 순종의 능입니다.

 조선의 국명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칭함에 따라 황제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었기에 왕릉과 차이가 있습니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

 홍릉: 대한제국 1대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의 합장릉 ( 관련 사진 )

 유릉: 대한제국 2대 순종효황제와 원후 순명효황후와 계후 순정효황후의 합장릉 ( 관련 사진 )

 

▶왕릉과 황제릉의 차이

왕릉 황제릉
능침 앞에 제사를 지내는 건물로 '丁' 모양의 정자각(丁字閣)이 있습니다. 정자각 대신 사각의 침전(寢殿)이 있습니다.
봉분 앞에 석물이 있습니다. 향·어로 양 옆에 석물이 있으며, 다양한 동물상이 있습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왼편의 향로와 오른편의 어로로 구성된 2단의 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향로: 돌아가신 왕의 혼령이 다니는 길
※어로: 제사를 드리는 왕이 다니는 길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중앙의 향로와 좌우의 어로로 구성된 3단의 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정자각 앞 월대의 계단이 좌우에 있습니다.
※월대: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침전 앞 월대의 계단이 좌우, 정면 세 곳에 있습니다.

 

▶두 원과 일곱 묘

 남양주 홍릉과 유릉에는 두 능 외에 두 원과 일곱 묘가 있습니다.

 (1)영원

  고종과 순헌왕귀비 엄씨의 아들인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이방자)의 원

 (2)회인원

  의민황태자의 둘째 아들인 이구 황세손의 원

 (3)의친왕묘

  고종과 귀인 장씨의 아들인 의친왕과 의친왕비의 묘

 (4)덕혜옹주묘

  고종과 귀인 양씨의 딸인 덕혜옹주의 묘

 (5)고종 후궁 귀인 장씨 묘

 (6)고종 후궁 광화당 귀인 이씨 묘

 (7)고종 후궁 삼축당 김씨 묘

 (8)의친왕 후실 수관당묘

 (9)의친왕 후실 수인당묘

※귀인장씨묘, 광화당묘, 삼축당묘, 수관당묘, 수인당묘는 사적지 원형 보존과 훼손 방지를 위하여 비공개 중입니다. 

※능: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무덤

※원: 왕의 사친(왕을 낳은 후궁이나 왕족),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세손,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무덤

※묘: 나머지 왕족과 폐왕의 무덤

 

▶만난 날짜

 2019년 8월 18일

 

▶촬영 가능 여부

 촬영 가능

 

▶'사적 제207호. 남양주 홍릉과 유릉 (南楊州 洪陵과 裕陵)' 근처에서 만날 수 있는 지정문화재

(1)사적 제209호. 남양주 사릉

 남양주 홍릉과 유릉에서 버스로 5분 거리에 있습니다.

 걸어갈 경우,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사적 제207호. 남양주 홍릉과 유릉 (南楊州 洪陵과 裕陵)


▶웹사이트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 남양주 홍릉과 유릉: 링크

 

▶위치

 도로명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지번: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437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

 수도권 지하철 경춘선 금곡역에서 도보로 10분 소요

 

▶관람시간

 겨울에 짧아지고 여름에 길어집니다.

  매표시간 관람시간
11月, 12月, 1月 09:00~16:30 09:00~17:30
2月, 3月, 4月, 5月, 9月, 10月 09:00~17:00 09:00~18:00
6月, 7月, 8月 09:00~17:30 09:00~18:30

 

▶관람요금

 만25세~만64세 : 1,000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상세 설명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102070000 )

 

홍릉은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과 그의 부인인 명성황후의 무덤이다. 고종은 재위기간 중에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지 못하고, 내부에서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을 겪었다.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비운의 왕비이다.

명성황후의 무덤은 처음에 청량리에 있었으나 풍수지리상 불길하다 하여 고종의 무덤에 합장하였다. 광무 원년(1897) 대한제국 선포로 홍릉은 지금까지의 무덤 제도와 다르게 명나라 태조 효릉의 무덤 제도와 조선왕릉의 제도를 결합하였다. 12면의 병풍석을 세우고, 면석에 꽃무늬를 새겼으며, 난간 밖으로 둘레돌과 양석을 세우지 않았다. 무덤 아래에는 정자각 대신에 앞면 5칸·옆면 4칸의 침방이 있는 집 즉, 침전을 세웠으며 문·무석인과 기린·코끼리·사자·낙타 등의 수석을 놓았다. 문·무석인은 크고 전통적인 기법으로 조각되었다.

유릉은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의 무덤이다. 조선왕릉 중 한 봉우리에 3개의 방을 만든 동봉삼실릉은 유릉 뿐이다. 12면의 면석에 꽃무늬를 새긴 병풍석과 12칸의 난간석을 세웠다. 무덤 아래에는 침전이 정자각을 대신하였으며 그 아래 문·무석인, 기린, 코끼리, 사자상 등을 배치하였다.

홍릉과 유릉은 철종 이전의 무덤과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종을 황제로 칭하게 됨으로 제릉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서 석물의 규모나 종류가 달라졌다. 2개의 무덤을 하나로 묶기위해 외곽으로 담장을 설치하였으며, 양릉 중간에 돌로 만든 연못을 두었다.


▶사적 제207호. 남양주 홍릉과 유릉 (南楊州 洪陵과 裕陵) 모습

홍릉
홍릉 석물
유릉
유릉 석물
영원
영원 능침
회인원
의친왕묘
덕혜옹주묘
사적 제207호. 남양주 홍릉과 유릉
연지